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이동통신서비스의 화려한 기능을 아우성치듯 자랑할 때, 모 이동통신회사의 '사람을 향합니다‘라는 CF카피는 유독 눈에 띈다. 현란한 형형색색의 원색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무채색의 외딴 구석을 발견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결국엔 모든 기술의 진보가 사람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람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역설(逆說)을 역설(力說)이라도 하듯, ’사람을 향합니다‘라는 CF카피는 낮은 목소리로 따뜻한 휴머니즘을 간절히 외치고 있다.
지난 20일(토)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제 11경주에서 국산마의 최고 강자 중 하나인 ‘아침해(거세마, 4세, 한국)’가 경주 중 오른쪽 앞 다리에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경주 내내 선두권을 이끌며 파죽지세의 질주를 하던 ‘아침해’는 4코너를 돌다가 갑자기 다리를 절룩이며 뒤로 쳐지고 말았다. ‘우전 양측 근위종자골 복잡골절’이라는, 복잡한 이름만큼이나 경주마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아침해’는 결국 경주마로서 재기 불가라는 의료진의 판정을 받고 안락사를 당하고 말았다.
500Kg에 가까운 체중에도 불구하고 아이 팔뚝만큼이나 가느다란 발목을 타고난 경주마의 슬픈 운명은 사실 그리 낯설지는 않은 일이다. 개나 소, 돼지 등의 다른 가축과는 달리 오로지 달리는 그 자체만을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는 경주마로서는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달리 수 없다면 존재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드넓은 경주로를 질주해야 하는 본능에 괴로워하며 좁은 마방(馬房)에 갇혀 평생을 묶여있는 것보다는 고통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경주마의 슬픈 운명은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전이된다. 경주마를 가족처럼 돌보던 조교사나 기수, 관리사는 ‘아침해’처럼 불의의 사고로 곁을 떠나면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다. 연간 수억원의 상금을 벌어주는 돈벌이의 수단이 아닌, 비록 말 못하는 미물일지라도 함께 뒹굴고 부대끼던 가족이 없어졌다는 충격에 몇 일간은 밥도 잘 못 먹는다고 한다. 경주마의 그 맑고 깊은 큰 눈망울이 통음(痛飮)으로도 잊혀지지 않아 내세(來世)에서는 부디 인간으로 환생하라고 빌고 빌고 또 빈단다.
경마는 법적인 정의에 의하면 ‘기수가 기승한 말의 경주에 승마(勝馬) 투표권(마권)을 발매하고 승마 적중인에게 환급금(배당)을 교부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경마를 ‘환급금’, 즉 금전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곤 한다. 또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거의 금적적인 측면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경마의 주인공은 ‘말’이다. 자신들의 독감보다도 ‘말’의 재채기에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 바로 경마공원이다. ‘말’이 좋아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말’과 함께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 또한 경마공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이니 중독이니 하는 경마에 대한 잘못된 편견 속에 ‘말’에 대한 사랑은 희미하기만 하다.
‘말을 향합니다’, 그것이 바로 경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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