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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말에게도 맨발의 권리를 허(許)하라

 


 말은 인간처럼 신체에 무언가를 입거나 걸치는 동물입니다. 가면에서부터 안장, 코굴레, 보호담요(馬衣), 발목보호대 등 그 종류도 많습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말이 입거나 걸치는 것의 대명사는 바로 말이 신는 신발인 ‘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편자는 기제목(奇蹄目)인 말의 발굽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험한 길을 빠른 속도로 이동시키려면 말의 체중이 실리는 말발굽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서양에는 ‘No Hoof, No Horse' 즉 ’말발굽이 없으면 말도 없다‘라는 속담까지 있습니다.

 

 

 

말의 발굽

 


 야생 상태의 말을 가축으로 길들인 시점부터 편자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유럽에서는 기원전 2~3세기에 만든, 지금처럼 못을 이용해 발굽에 신기는 금속재질의 편자 유물이 있다고 하니, 편자의 역사는 거의 인류의 그것과 같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혹자는 인류의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모두 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며, 편자의 발명은 수레바퀴의 발명에 못지않은 대사건이라고 평가할 정도입니다. 사실 불과 1~2세기 전까지만 해도 말은 지상 최고의 전쟁무기이자 수송수단이자 농경도구였으니까요.

 

 

 

단원 김홍도의 '편자박기'

 


 장제(裝蹄)는 말발굽에 편자를 신기는 일련의 과정을 일컫습니다. 장제사는 육중한 체중의 말을 다루며 편자를 박아야 하는 만큼, 자격증이 있어야만 활동할 수 있는 전문직종입니다. 장제가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체중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말은 각종 질병과 장애에 걸리게 됩니다. 수백분의 1초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경주마라면 약 한 달에 1번꼴로 이뤄지는 장제는 더욱 더 중요한 정례행사입니다. 말발굽을 칼로 다듬고, 불에 달군 편자에 못을 박는 과정이 다소 잔인(?)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장제하는 말발굽 부분은 사람의 손발톱처럼 신경이 없는 탓에 말은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장제하는 모습

 

 그런데 말에게 오히려 편자가 해가 된다며 말에게서 편자를 벗겨주자는 운동(Barefoot Movement)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로 영국이나 미국, 독일, 호주 등과 같은 마필 선진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요, 이들은 말의 주요 사용용도가 군마(軍馬)와 운송, 농경일 때는 편자가 필요했지만, 지금처럼 레저와 스포츠의 목적으로만 사용될 때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편자는 오히려 말발굽의 자연스러운 적응능력을 감소시키고, 질병에 걸릴 확률만 높인다는 것입니다. 말은 6천만년 이상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신들의 생태에 알맞은 발굽으로 진화했는데, 인간이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 편자를 박았다는 논리입니다.

 

 

 

 

편자 박았던 발굽(Before), 맨발 발굽(After)

 

 

 말이 편자를 신지 않고 맨발일 때의 장점을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① 지표면에 말발굽이 유연하게 밀착할 수 있어 말과 기승자 모두에게 안전하다

  ② 발굽 부위에 병이 발생하면 보다 신속하게 파악이 가능하다

  ③ 혈액순환이 잘 된다

  ④ 효율적으로 충격을 분산할 수 있도록 발굽이 변형된다

  ⑤ 기승자가 낙마하거나 뒷다리에 채일 때 덜 위험하다

  ⑥ 편자가 강한 충격으로 떨어져 나가면 발굽에 큰 상처가 생길 수도 있다

  ⑦ 장제 비용을 아낄 수 있다

  ⑧ 장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양쪽 균형이 맞지 않거나, 못을 잘못 박는 등)이 없다


 편자냐, 맨발이냐의 선택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양자택일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맞춤 상품이 등장했으니, 바로 말신발입니다. 운동화처럼 발굽에만 신겼다가 벗길 수 있는 신발, 발굽 윗부분만 보호하는 밑창 뚫린 신발 등 다양한 종류의 말신발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편자처럼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탈부착이 가능하기에 말신발은 최근 그 수요가 늘고 있는 있지만, 말신발의 효과도 아직 명확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말신발

 


 편자 사용을 반대하는 이들은 편자가 ‘필요악(necessary evil)’이라는 폐쇄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말이 군마나 물자수송 등에 쓰일 때는 언제라도 말을 타거나 짐을 끌 수 있도록 발굽의 상태에 무관하게 무조건 편자를 박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일괄적으로 편자가 좋다, 맨발이 좋다, 아니면 말신발이 좋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말과 인간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인류 모두의 숙제일 것입니다.


 

출처 : 여기는 경마공원 ^^
글쓴이 : KR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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