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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마 ‘빚더미를 헤치고’

 

◆ 한국경마 ‘빚더미를 헤치고’

 - 50년 동안 적자 행진

 - 재정난으로 집단휴직 사태까지


통상 경마는 황금알을 낳는 고수익 사업이며, 마사회는 현금이 풍부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으나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서구식 경마가 도입된 이래 경마는 언제나 열악한 환경과 존폐의 위기 속에 놓여 있었고, 마사회는 만성적인 운영적자로 어마어마한 빚더미에 깔려 신음해야 했다. 1925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생긴 이래 1971년까지 무려 50여년가까이 이 땅의 경마는 만성적인 적자와 부채에 시달렸다. 한국전쟁 직후 뚝섬경마장 초기는 마사회와 한국경마가 극심한 재정난으로 임직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던 암울한 시기였다.


1954년 뚝섬 춘계경마가 끝난 시점에서 결산해본 마사회의 재정 상태는 파산직전이었다. 부채 총액은 1천5백만 환(圜). 춘계경마 기간 동안 마사회가 수득금으로 벌어들인 돈이 1천만 환이었으니 빚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부채의 항목별로 보면 은행 등에서 빌린 차입금이 385만환으로 가장 크고, 마권세 체납액이 828만환, 국고납부금이 131만환으로 세금체납액도 상당했다.


마사회는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경마팬을 유치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조랑말 경주가 아닌 개량마(더러브렛) 경주를 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개량마 도입을 위한 자금 마련에 골몰하게 된다. 이에 김우경 회장(5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진정서를 보내 2천만 환의 종마(씨수말) 수입자금을 국고에서 보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진정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농림부는 재정난 등을 이유로 마사회의 경영진 교체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였고, 경영진 교체 요구는 당시 자유당 천하로 변해가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결국 1954년 10월 5대 김우경 회장은 자유당 조사부차장을 지낸 6대 김성광 회장으로 경질되고, 이사 3명 중 2명도 자유당계 인사로 교체되었다. 추계 경마가 끝나고 겨울이 되자 마사회의 부채는 더욱 늘어나 2천만환에 달했다. 이 때 마사회가 보유한 현금 보유액은 130만환 이었는데 다음 해 춘계경마가 시작할 때까지 써야할 인건비만 320만환이나 됐다.


결국 마사회는 경마휴업기간 동안 회장․부회장․이사․감사를 제외한 전 직원이 휴직하도록 하자는 집단휴직제도를 도입했다. 마사회는 월동기간 동안 급료를 받지 않아도 이의가 없다는 각서를 징구하고 휴직에 불응한 직원은 바로 면직하기도 했다. 집단휴직제도 도입 첫해 39명이 휴직되고 다음해 13명이 복직된 후 겨울에 다시 32명이 휴직하는 등 휴직과 복직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1960년대까지 계속됐다.